1. Silk Road & Homo Viator
섬머셋 모옴의 달과 육펜스에서는 한번도 가 보지 못한 미지의 “그 곳“ 에 대한 신비한 그리움을 격세유전 (Atavism) 적 회귀본능으로 설명한다. “자신이 태어나도록 정해진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태어나는 사람들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우연이 그를 다른 환경속으로 던져 넣어 살아 가게 하지만, 그들은 항상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 곳 본향에 대한 향수 (Nostalgia for a home they know not) 를 가지고 살아간다“ -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실크로드에 대한 동경이 이런 격세유전의 끼침일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어쩌면 내 향수의 근원이 내 선조의 선조가 옥문관 봉화대 수자리를 살던 한나라 병사였거나 놉노르 호숫가 누란 왕국을 마지막까지 남아 지키던 선비였거나 혹은 흉노, 돌궐의 기병으로서 유라시아 서쪽 끝 흑해초원 까지 말달리던 기억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꽤 오래전 울란바트로 출장을 갔을때 교외의 끝없는 초원을 보면서 느낀 묘한 기시감. 아하! 여기인 듯 싶은. 그래서 본향을 찾듯 오아시스길이든 초원길이든 유라시아를 잇는 絲綢之路를 꼭 걸어봐야겠다 생각을 해왔다.
2. 여행사
사실 여행은 나 스스로 갈곳을 정하고 공부하고 동선을 짜서 움직이고 보고 경험하는 그런 “자기 결정권“이 있는 게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때문에 여행사 상품은 전혀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실크로드 여행을 생각할 때 혼자서는 아마도 감숙성 끝 돈황까지는 어찌어찌 갈수 있을 것 같은 그림은 나왔지만 그 이후 부터는 참으로 막막 강산 이었다. 2000년 회사를 그만두고 틈이 있던 시기에 Silk Road 를 가려고 준비를 하다가 포기를 한것도 결국 여행의 “자기 결정권“ 충족의 어려움 탓이었다. 모든게 아득하기만 했다
이러다 평생을 떠나지도 못하는게 아닌가 하는 초조함이 커져만 갔다. 혼자서는 여정이 쉽지 않으니 그럼 가이드가 필요한데… 그러다 오지여행 상품 인터넷 검색에서 혜초를 발견하곤 탁 하고 무릎을 쳤다. 일단 내가 가려고 하는 여정과 거의 일치하고 또 기사에서 찾아볼수 있는 Story 가 상당히 믿음을 주었다.
그래서 생전 처음 여행사를 이용한 여행에 나섰는데 잭팟의 느낌,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아마도 혼자서 준비했다면 한달은 너끈히 넘어 걸렸을 그 길이었으나 버스로 기차로 아주 효율적인 동선으로 짜져 있어 우리는 Silk Road 자체만 즐기면 되는 여행길이었다. 아주 편안하고 널찍한 전용 버스, 고급 호텔, 매끼니마다 산해진미 진수성찬이 기다리고 있어 오히려 실크로드 길에 그리고 척박한 이 길을 걸었던 선인들에 미안한 심정이었다
여행 전문가들이 짠 서사-서정이 있는 여정, 그리고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의 박학다식 가이드분 (윤성룡) 의 설명에 너무도 배운게 많았다 (역시 아무리 책을 맗이 읽어도 책에서 얻는 지식 보다는 경험 많은 가이드의 현장감 있는 설명이 훨씬 좋았음 ). 처음으로 다시 직업을 택할수 있다면, 가이드란 직업을 가져보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3. 세개의 풍경
1) 위수와 황하 (3일차): 강태공이 낚시를 드리우던 위수 강가, 또 그 강을 따라 심어져 있다는 버드나무들 (渭城柳), 이 위수강가에서 서쪽으로 먼길 떠나는 친구 지인을 위해 버드나무를 꺽어 (渭水折柳) 둥글게 고리를 (꼭 다시 돌아오라는 고리 環) 만들어 걸어 주었다는 낭만적 이별을 느끼고 싶었으나 … 우리 윤가이드가 저게 위수입니다 할 때 이미 상류로 작은 개울 수준이었다. 담번에 방문 할때는 위수강가에 퍼질고 앉아 강태공처럼 곧은 낚시로 세월을 낚는 한량이 되고 싶기도 하다...
대신 황하는 맘껏 볼수 있었다. 청해성 곤륜 산맥에서 발원한 강이 북쪽 오르도스쪽으로 치올라가기 전 난주 인근에서 본 황하석림 유가협 그 도도한 물길들. 특히 우리가 묵었던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아 아침 일찍 황하강가에서 곤곤한 그 물결을 볼수 있어 망외의 기쁨을 누릴수 있었다 (황하 강변 사진 #1)
2) 쿠무타크 사막 (6일차): 새벽에 일출을 보러 갔는데, 아마 이번 여정중에서 제일 인상적인 풍광을 접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첫 입장객이고 또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는 모래사막. 태초의 적막 황량함 속에서 해가 서서히 떠오르는 장관.. 우리모두 침묵속에 오래도록 모래산 능선에 앉아 멍하니 저 먼 사바세계를 바라보는 심정이 참으로 처연한듯 했다. 최소한 그 사막의 시간 만큼은 너무도 평화로웠고 감격 스러웠다... (쿠무타크 사막의 일출 #2)
3) 시안 (8일차) : 시안은 예전 출장 기회가 몇번 있었는데 일부러 가지 않고 꼭꼭 남겨둔 Dream “Mustsees“ 였는데 너무도 짧은 여정속에서도 역시 시안이구나 하는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꼭 따로 시간을 내어 시안만 며칠 머물며 둘러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당불야성, 저녁 시간 거리의 활기 자유분방함, 중국 답지않게 너무도 자유스런 분위기가 넘치는 낭만의 도시. 참으로 아름다고 고풍스러운 서사, 두보 왕유 이상은의 싯귀가 곳곳에 널려 있는듯 했다. 그리고 호텔에서 그리 멀지 않아 아침에 뛰어 가 본 곡강지 - 두보가 노래한 곡강, 옛날 당나라 과거에 급제한 이들을 위해 황제가 친히 연회를 베풀고 당시 젊은이들이 해방구로 인식되던 낭만과 놓여남의 여유가 만장하던 曲江池 - 여기 와 볼수 있어 너무도 행복했었다 (곡강지 입구 사진 #3)
마침내 떠나는 아침, 두보의 애강두를 읇조리며 다시 와야지 하는 다짐을 해 보았다 - 실크로드 2편을 기약한다.
哀江頭 (애강두) 곡강 머리에 서서 울다
淸渭東流劍閣深(청위동류검각심) 맑은 위수물은 동으로 흐르고 검각산 깊은데
去住彼此無消息(거주피차무소식) 떠난자 남은자 서로 소식이 없구나
人生有情淚沾臆(인생유정루첨억) 인생살이 정이 많아 눈물이 가슴 적시는데
江水江花豈終極(강수강화기종극) 강물과 강물에 흐르는 꽃은 끝이 없구나
黃昏胡騎塵滿城(황혼호기진만성) 해질녘 오랑캐 말발굽에 성은 먼지가 자욱한데
欲往城南望城北(욕왕성남망성북) 성 남쪽으로 가려다 멍하니 북쪽을 바라보네
이번 여행을 풍성하고 아름답도록, 참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어준 혜초여행사, 그리고 가이드 유성용님, 강 차장님게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