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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을 지탱하는 에베레스트 신의 영역을 침범하다
작성일 2010.01.26
작성자 정*남
상품/지역
트레킹히말라야


아! 히말라야, 다시 ‘겸허(謙虛)’를 배운다
세계 최고봉 설산, 온난화로 급속한 얼음사막화
정수남의 히말라야트래킹 두 번째 이야기-에베레스트를 가다(1)

<지난 2007년 2월 네팔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래킹(9일)을 다녀온 뒤 3년 만인 지난해 12월 25일 다시 히말라야를 찾았다. 이번에는 15일짜리 에베레스트 코스다. 생애 처음 고산증세로 죽음의 문턱을 ‘왔다갔다’했던 기억은 그저 추억이 됐고 3년을 가슴속에서 그리워했던 그곳을 다시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다. ‘설산이 주는 매혹, 한계극복을 통한 희열, 무엇보다 거대한 자연과 인간 삶의 원형과 같은 그들의 생에서 배우게 되는 겸허함’이 이곳을 다시 찾는 이유 같다. 이번 여정에서 잊을수 없는 것은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세계 최고봉을 목격한 일이다. 동시대인으로서, 특히나 에너지에 종사하는 직업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을 다시 한번 오래도록 생각하게 했다. 이번 이야기도 여정을 따라 기록한 한편의 일기와 같다. 정보와 경험을 나눌수 있어 감사하다>

히말라야행 번개팅, 화려한 그들의 이력
지난해 성탄절 새벽 6시 인천국제공항.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칼라파트라를 목표로 15일 동안 동고동락할 일행들과 만났다. 일면식도 없는 번개팅 같은 만남이라 설레임이 앞섰던 터다. 인사를 하자 일행 중 군살하나 없이 늘씬한 ‘그레이하운드 사냥개’를 연상하는 한 남자가 묻는다. “아저씨도 이번 산행갑니까?” 매우 걱정스런 눈빛을 담고 있다. 나이는 먹어 보이지 더구나 배가 좀 뽈록하니 ‘디자인’으로만 봐서는 이번 산행코스가 무리로 보였던게다. 이 남자 대한민국 안가본산 없고 백두대간을 수십 차례 종주했다니 그럴 만도 하다. 또 다른 남자는 겨울 등산학교를 졸업한 암벽등반 클라이밍 전문가다. 유일한 여성이 있다. 연식은 된 것 같은데 설악산 종주만 300번에 백두대간 코스를 여러 번 탄 전문 산악인이란다. 이번 산행은 총 8명이 동행한다. 대부분이 아프리카부터 록키산과 히말라야를 1번씩 다녀온 경력자다. 기가 팍 죽는다. 난 올해 관악산 3번이 목표였는데...
7시간 비행으로 도착했다. 3년 전(2007년 2월 19일) 안나푸르나 코스로 갔을 때 본대로 카트만두는 쓰레기 천지였고, 분지의 특성인 스모그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 동대문 같은 타밀시장은 여전히 분비고, 무엇을 파는지 분간조차하기 어렵다. 아마도 질서 있는 삶에 익숙한 이방인의 시각인 것 같다.
첫날 밤은 네팔 최고의 호텔 하이얏트에서 여장을 풀었다. 호텔 담을 사이에 두고 환경은 지옥과 천국으로 갈리는 것 같았다.
둘째 날. 새벽 4시기상이다. 산행의 시작기점인 루카라로 가기 위해서는 18인승 경비행기를 타야 한다. 네팔 기후 특성상 안개로 비행기가 며칠씩 안뜰 때도 있단다. 비행시간은 대략 1시간 남짓이지만 걸어가면 8일이 걸린단다. 역시나 이날도 안개가 자욱하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 예정대로 6시 30분 출발은 못하고 기다림이 시작됐다. 한 10시쯤 됐나.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안나푸르나 코스때 동행했던 다왓이란 셀파를 만난 것이다. 부등켜 안고 흔들어 대니 모두들 쳐다본다. 드디어 출발. 지루한 기다림은 비행기 창밖에 펼쳐진 구름 속 높은 설산의 자태가 충분히 보상을 준다. ‘저 산이 내가 올라갈 파라다이스인가.’ 설렌다. 다시 오고파 3년을 애태웠던 히말라야 산맥을 보니 속이 뻥 뚤린다.

에베레스트 관문 루카라, 마지막 문명
2600미터 루카라다. 5분 간격으로 4대의 경비행기가 연속으로 들어온다. 안개가 오기 전에 재빨리 수송을 마쳐야 한단다. 보통 비행장은 평평한데 여기 활주로는 100미터도 되지 않은 언덕을 그대로 사용했다. 내려갈 때는 경사활주로 탄력을 이용해 가속하다 그대로 절벽으로 활강한다. 오금이 저릴 만큼 아찔하다. 초기에는 추락사고도 꽤나 있었을 것 같다.
공항에 현지 셀파가 마중 나와 있다. 고산지대에만 산다는 야크도 4마리 대기해있다. 안나푸르나코스는 현지 포터가 짐을 메고 올라가는데 반해 이곳은 산세가 험하고 일정이 15일이라 등짐으로는 어려운가 보다. 나중에 알았지만 산소가 부족한 50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를 사람의 힘으로만 넘기는 어렵단다.
루카라는 에베레스트 관문이라 그런지 제법 상권도 있고 깨끗하다. 멀리 빙하가 녹은 차가운 물이 힘차게 내려온다. 마을이 초라하지만 제법 생기가 돈다. 우리 60년대 시골을 보는 것 같다. 옛날 시골 외갓집 가는 길이 이랬을까. 동네 꼬마들이 학교 같다 오는 모양이다. 사탕 좀 나눠주니 난리다. 똘망거리는 눈이 아주 예쁘다. 아무리 산골이라도 구걸하는 이는 없다. 자존심이 대단하다.
서너 시간 걸었을까 조금 지칠 때쯤 계곡너머에 2600미터 팍팅이라는 마을이 보인다. 오늘은 여기서 묵는다. 이미 어둑한데 모 국립병원 흉부외과 과장인 룸메이트가 빙하계곡물에 세족식을 해야 무사등정을 한단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니 칼로 후비는 아픔이 느껴진다. 그 외과과장은 5분 넘게 담고있다. 독종이다. 숙소에 모두 불평이다. 역시 난방은 안 되고 차가운 물도 쫄쫄거린다. 세수는 엄두도 나지 않는다. 양치만 악물고 한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열악한 산장이 마지막 문명이고 최고의 시설이었다.
셋째날 아침. 여기서는 678이란 암호를 쓴다. 6시 기상 7시 식사 8시 출발이다. 하지만 짐을 야크에 묶어 산을 타야 하기 때문에 모든 짐은 7시 전에 싸야 한다. 아침 먹고 한 3시간 정도 올라갔을까. 집집마다 장작더미를 쌓고 있다. 한겨울이니까 월동준비 하겠지 하는 생각도 잠시. 안나푸르나 쪽은 나무벌목을 극히 제한했는데 여기는 집집마다 좀 여유로워 보인다.

눈물겨운 길 위에서의 인연
집마다 연간 2그루 벌목만 허용한단다. 먼저 정부에 세금으로 납부하고 허가가 나면 벌목하는데 나무크기마다 다르지만 보통 그루당 15만원에서 20만원 정도란다. 3년 전 초등학교 교사가 월 100달러를 번다고 했으니 엄청난 지출인 셈이다. 자연히 난방은 못하고 조리화덕용 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간혹 루카라 상가에서 LPG통이 보였으나 이는 특수층 상가에서 사용되고 이것도 카트만두에서 8일 정도를 수송하니 비용이 살인적이라 할 것이다.
점심쯤 되니 군인이 초소를 지키고 있다. 3년 전 마우쪄뚱 반군이 자리 잡았던 조살레다. 네팔 모항공사 호텔이 좋은 자리에 잡고 있다. 태양열집열판이 많이 설치된 것을 보니 지역 득성상 에너지 자립이 중요할 것 같다. 조금 지나자 호텔 뒤편 산줄기가 산사태로 휩쓸려 있다. 빙하의 심술일까. 국립공원 입산신고를 하고 계속 걷는다. 다음 숙박지인 3440미터 남체로 가는 길은 힘찬 빙하계곡의 오솔길을 거쳐 급경사하는 산악코스다. 벌써 헉헉거린다. 일행들도 모두 힘들어한다. 50도 이상의 가파른 산길이 야크도 힘든가보다.
난 야크길을 버리고 더 가파른 지름길을 택했다. 그래도 산이라면 하는 자만심에... 착각이었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번 흐트러진 호흡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다. 고산증세 시작인가. 조금 전부터 이 산길을 키높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네팔 촌로가 눈에 띤다. 꽹한 눈과 골 깊은 이마의 주름살에 그을린 피부가 피난길의 우리아버지다. 자식의 한끼를 위해 몸을 던졌던 그 시절, 가슴이 여며온다. 사탕을 까서 기다리다 입에 넣어 준다. 그와 나는 같은 하늘을 본적도 없는 누구의 아버지 일 것이다. 웃는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물도 없는 것 같다. 내 수통을 건네자 미안해 못 먹는다. 아마 계급사회의 관습도 있는 것 같다. 다시 권한다. 왠지 뿌듯하다.
고군분투 결과 능선에 올라가니 오렌지 아줌마가 반겨준다. 에베레스트정상이 보이기 시작하는 길목이다. 오렌지 값이 고무줄이다. 모이는 사람이 많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시장원리가 철저하다. 내려오는 길에 산다고 너스레를 떠니 한 개를 서비스로 준다. 같이 사진도 찍는다. 8일 후 내려오는 길에 다시 들렀더니 가격이 4배나 올랐다. 어이없지만 약속대로 사주었다.

인간한계의 리트머스 시험지, 고산증세
다시 오르기를 한참 드디어 마을이 보인다. 남체다. 에베레스트길에서 가장 크고 없는 것빼고는 다 있는 마을이란다. 물자수송 헬기비행장도 있어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곳이다. 그런데 산 윗길에서 본 남체는 중심이 폭격 맞은 폐허를 연상한다. 자세히 보니 광장에 의류, 신발 등 생필품 시장이 서있다. 중국 티벳쪽에서 온 보따리 상이다. 6천미터의 고산 차마고도를 거쳐 베이징물건이 들어온단다. 보따리상이 두달 동안 세수를 안 한 것 같다. 머리기름부터 손등 때가 볼만하다. 멀지 않아 우리도 같은 행색이 됐지만... 이 속에서 발견한 50와트 정도의 태양광모듈판은 소형발전기 대신 생명 그 자체란다.
드디어 고산증세 시작이다. 어질어질 미식거린다.
남들은 몸 만들어 산에 온다는데 난 출국 2일전 좀 이른 부서 망년회 겸 등반기념모임에서 폭탄주를 ‘만땅’ 마시고 비몽사몽간에 왔더니 더하면 더할거다.
남원에서 온 지리산지킴이 이 선생이 고산병에 대한 겁을 주기 시작한다. 작년 킬로만자로에 갔을 때는 최종 등반율이 70% 이하란다. 지금부터는 세수와 머리감기를 금지하고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몇 번씩 반복이다.
저녁 먹는 자리에서 난리가 났다. 엄마의 권유에 떠밀려 어쩌다 합류한 22살 순철이의 장비를 보니 딱 관악산 수준이다. ‘고산용바지 소형배낭 아이젠 스핏 헤드랜턴 보온물통 산악내복’ 등 필수장비도 없다. 아찔하다. 이대로 가면 죽음이다. 있는 돈을 다 털어서 장비를 구입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