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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나푸르나] 푼힐/베이스캠프 12일/헬기하산 10일
작성일 2020.01.22
작성자 황*열
상품/지역
트레킹네팔 히말라야

이번 겨울 '풍요의 여신'이라는 뜻의 안나푸르나로의 트레킹은 참 극적인 과정을 통해 전개되었다.

우선 카트만두에서 날씨 탓에 포카라행 국내선 비행기를 무려 6시간 기다렸지만 다행히 포카라로 갈 수 있었다, 30분 비행 도중에 하늘에서 바라본 북쪽 랑탕 지역과 안나푸르나를 잇는 희고 장엄한 연봉들의 모습과 그 남쪽 작은 산들을 끝없는 섬들처럼 만들어 보이는 운무 가득한 하늘의 장관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압권이었다. 밤 늦은 시간까지 험한 길을 찝차으로 이동해야 했던 울레리를 시작으로 히말라야 트레킹 중 전망이 가장 좋다는 히말라야 언덕인 푼힐전망대로 가는 과정은 날씨도 좋았고, 히운출리, 잘생긴 안나푸르나 남봉, 신의 영역인 마차푸차레, 가장 높은 다울라기리, 닐기리 히말, 강가푸르나 등 하늘 높이 솟아오른 위풍당당한 영봉들의 모습을 가면서 혹은 노을 속에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일출과 함께 감격에 겨워 볼 수 있는 행운이 뒤따랐다. 유능한 메인 가이드인 빠상과 민들레씨를 비롯한 착하고 헌신적인 보조 가이드들, 네팔의 백종원이라 부를만한 메인 요리사와 쿡보이들, 우리들을 최대한 편하게 대하면서도 유능하게 흐름을 잡아가는 인솔자 윤일중 대리의 환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혜초팀의 헌신적인 서비스 덕분에 힘든 여정을 전혀 힘들지 않게 푼힐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황제 트레킹'의 진수를 보여준 이번 혜초팀에 감사드린다.

날씨까지 너무 좋아서 여기 오신 분들은 다들 삼대에 걸쳐 음덕을 쌓은 분들 아닌가 라는 자화자찬이 끝나기 무섭게 시누와부터의 일정은 아침부터 여름비같은 비가 오더니 도반를 거쳐 히말라야 롯지에 다달았을 때는 싸락눈이 이미 함박눈으로 바뀌어 환상적인 한겨울의 나무들의 눈꽃 잔치를 체험하는 변화를 통해 우리들은 하루에도 사계절을 다 겪는 것 같은 분위기에 기분이 더욱 더 업되는 느낌을 받았다. 데우랄리가는 길은 더욱 더 고도가 높아지고 엄청난 눈으로 설국을 이룬 상태라 유능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조심 조심 험한 길을 걷고 걸어 롯지에 도착했다. 사람들로 붐비는 데우랄리 롯지에서도 타국산악인들의 부러움을 사는 '왕의 한식' 밥상을 받고, 얼마 안 남은 이번 여정의 최고 하일라이트인 MBC와 ABC에 도달할 꿈을 안고 잠을 자는데 간밤에 엄청난 폭풍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닫힌 문사이에 눈이 수북이 들어와 자는 침대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놓인 신발을 눈으로 다 덮을 정도였으며, 밖에 나가 보니 걸어놓은 우비와 배낭 커버는 이미 다 날라가고 없었다. 불안한 마음에 전전반측,비몽사몽타가 엄청난 산사태 소리가 같은 굉음을 듣기도 하면서 이윽고 아침에 나가 보니 이미 눈은 사람 허리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속에 아침을 먹고 눈발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다 올라가는 것이 힘들다고 인솔자님이 결론을 내리고 눈이 그치기를 기다려 점심쯤에 하산하자고 해서 선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하산 명령이 났다. 더 눈이 쌓이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니 지금 하산하는 팀들을 따라 우리도 하산하자고 해서 10시 30-40분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한 지 얼마 안돼서 눈사태를 만나 데우랄리로 돌아오는 팀과 만나서 상황을 판단한 가이드님들이 당신들의 경험을 살려 최대한 빠르게 위험지역을 벗어나도록 해서 우리팀은 안전하게 히말라야 롯지까지 신속하게 내려왔더니 엄청난 산사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치 전쟁터를 벗어나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내려온 길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나중에야 명확히 알았지만, 불과 30여분 이내 시간 속에서 누군가 먼저 가고 나중에 갔느냐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는 모골이 송연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우리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트레커들과 현명한 리더십으로 상황을 잘 극복해낸 우리 가이드와 현지 가이드께 감사를 드린다.
이후 눈사태 소식을 명확히 알게된 우리 모두는 납덩이를 올려놓은 것 같은 무거운 마음으로 나야풀까지 하산을 하면서 남은 일정을 소화했다. 페와 호수의 아름다움, 개 반 원숭이 반인 사원, 덜발 광장, 쿠마리 사원 하누만 도카, 릭샤 체험 등이 있었다. 인솔자님이나 우리 모두, 다들 겉으로는 담담했지만 우리와 같은 장소에서 묵던 한국인들이 우리보다 앞서 길을 만들어가다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당한 것을 목격했기에 진정 즐거울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풍요의 땅에서 뜻밖의 죽음을 경험하고, 죽음이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위기의 순간에 리더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접시물에도 코가 빠진다고 했듯이 살면서 만나는 뜻밖의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고는 있었지만 안나푸르나에 대한 사랑 역시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에 함께 한 분들 역시 언젠가 히말라야의 롯지에서 순박한 미소의 그들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1월 22일 그 기억들이 증발되기 전에.

평점 4.8점 / 5점 일정5 가이드5 이동수단5 숙박4 식사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