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프게 걷는가 싶었는데 어느덧 종착점에 다다른다. 오늘은 걷기 마지막날로 산파이오에서 산티아고까지 14키로를 걸은후 콤포스텔라 성당으로 들어가는 코스이다. 모든게 여유로운 아침이다. 짧은거리여서 심적 부담도 없는데 오후일정이 비어있다.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당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어린애처럼 설레인다. 이나이에 설레임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어제처럼 변덕스런 비가 내리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땅은 질퍽하고 빗발은 사선으로 흩날리지만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남은 짧은 거리가 조금 아쉬운가? 좀 더 걷고 싶다는 마음이 살짝 내비친다. 시간도 충분하여 느긋하게 걷는다. 평평한 순례길이 이어진다. 시간이 갈수록 순례자가 많아지는데, 모두들 표정이 밝은 모습이다. 혼자 걷는이들이 많아 보이지만 무리를 지어 걷는이들도 종종 나타난다. 가족단위 행렬도 적지않다. 부부가 걷는가 하면, 아버지와 딸, 할아버지와 손녀가 걷는 모습도 보인다. 보는이의 마음이 따뜻해진다. 덩치큰 털보 순례객이 지나가면서 거의 다왔다고 환한웃음으로 덕담을 건넨다. 전세계에서 다양한 인종이 모여들어서 언어소통이 자유로울 수가 없다. 설레이는 마음을 서로 교감하고 싶은데 조심스러운 것이다. 대부분 눈웃음과 부엔카미노로 인사를 하지만 간혹 짧은 영어 대화가 오간다. 짧은 영어에 부담이 가는데 대응을 하다 보면 끊임없이 말을 쏟아낼 기세다. 아싑지만 적당히 끊어야 한다. 산티아고를 직전에 두고 기쁨의 언덕이 나타난다. 순례자들의 모습을 한 구조물이 있고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이 조망된다. 머나먼 순례길을 완주하고 이제는 눈앞 대성당을 목전에 두고 기쁨에 젖는다는 의미란다. 지금으로 본다면 발 물집, 무릎부상, 몸살 등을 극복한다는 애기겠지만 옛날에는 어땠을까? 운좋게 산적을 피하고 도적도 피해야 한다. 조악한 신발에 허름한 망토수준으로 거친 자연을 헤쳐나가야 한다. 혹시 병이라도 걸리면 첩첩산중 또는 망망들판에서 방법이 없다. 그 모든걸 극복하고 도달한 언덕인데.... 기쁨이란 단어는 똑같지만 그의미와 심도는 비교할수 없으리라. 전 구간을 완주하는지 젊은 여자 순례객이 커다란 배낭을 메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쓰러질듯이 걷고 있다. 도와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이건 본인과의 약속이고 의지의 표현이기때문에 도움이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겠는가.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도시를 가로질러 이십여분을 걷고 캄포스텔라 대성당 광장에 도착한다. 광장은 널디 넓고 성당은 높기만 하다. 미리 짐작은 했지만 성당은 거대했고 고풍스러워 경외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포즈로 성당을 올려다보고 있다. 한쪽에서는 젊은친구들이 커다란 목소리로 합창을 한다. 높은 성당 종탑을 사진에 넣고싶어 카메라를 바닥에 놓고 머리를 맞대면서 씨름을 하는 사람도 있다. 신발 양말 다벗고 큰대자로 누워버린 이도 있고, 성당을 바라보고 무릎을 꿇는 이도 보인다. 나도 그늘가에 신발 양말를 벗고 배낭을 배개삼아 하늘바라보기를 한다. 시간도 많은데 하염없이...과정이 즐거웠던것인가? 막상 광장에 도착하니 허전함이 몰려온다. 왜 걸었을까? 뭐가 바뀌었을까?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걸었고, 걷다보니 행복하다는 느낌이 있었던거 같은데, 왜 행복감을 느꼈을까?...아프지 않고 걷는다는 안도감? 주변 걱정거리를 잊어버리는 편안함? 비록 짧은거리이지만 완주했다는 성취감? 일시적인 행복인지, 마음의 변화인지.....귀국하면 곰곰히 복기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