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시도했던 이집트 여행이 테러와 코로나로 좌절되었다. 세 번째 시도도 인근 가자 지구의 난리로 잠시 주춤했지만, ‘혜초’ 여행사라는 든든한 백을 믿고 과감히 나섰다.
광활한 사막을 따라 남에서 북으로 흘러가는 한 자락의 물줄기와 쨍쨍 내리쬐는 태양 그리고 지천에 깔린 풍성한 돌을 자본 삼아, 5,000년 전 지금도 감히 시도하기 힘든 경이롭고 아름다운 문명을 태동시킨 이집트이다.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로 내 마음 속의 영웅이 된 람세스2세의 기운을 직접 느끼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여행의 촉진제가 되었다.
아랍인의 도시가 되어 버린 카이로는 아프리카와 중동과 유럽 문화가 뒤섞인 정리되지 않은 어수선함이 베어나왔다. 조상님들의 무덤과 신전 덕에 멋진 문화를 가진 그들의 땅답게, 산 자와 죽은 자가 뒤 섞여 사는 무덤이 카이로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끌었다. 고대 왕들의 흔적뿐 아니라 모세와 아기 예수의 자취도 느꼈다. 옛날 대상들의 터에 자리잡은 만물상 시장과 시시때때로 들려오는 아잔 소리와 더불어 쾌쾌한 흙먼지와 혼잡한 교통이 혼을 쏙 빼놓는 도시였다.
나일강을 따라 크루즈에서 머문 4일 동안의 시간은 물과 해와 달 그리고 바람의 조화만으로도 황홀 그 자체였다. 신 새벽 별빛을 따라 어두운 길을 나서서 떠오른 태양의 붉은 기운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끝없이 다가오는 사막과 밀밭을 지나 아부심벨로 가는 길은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신비로움마져 느끼게 했다. 나세르 호수 앞, 큰 바위산에 있는 람세스와 네페르타리의 신전은 이 여행의 백미가 아니었을까!
이시스 여신의 필레 신전, 소베크와 호루스신을 위한 콤옴보 신전, 사랑의 여신 하토르 신전, 아몬신에게 봉헌한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까지... 처음 들어서는 순간 거대한 탑문과 돌 기둥, 오벨리스크 그리고 조각상에 압도당한다. 하나 하나 꼼꼼히 살펴보면 세심하게 새겨 넣은 벽화와 문자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파스텔톤의 채색에 경탄이 절로 나온다. 석양에 한 줄기 바람을 친구 삼아 수 천년 전 지어진 신전을 걸을 수 있는 행운을 가질 수 있음은 최고의 축복이다.
옛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는 지금은 화려했던 그 흔적은 남아있지 않고 대추야자나무가 무성한 자그마한 농촌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프타 신전 유적이 남아 있는 박물관에는 람세스 2세가 한쪽 다리을 잃고 쓸쓸히 누워 있다. 안마당에 있는 앨러베스터로 만든 스핑크스의 훤한 모습과 전시된 유적들이 그나마 그 시절의 여운을 남겨준다.
사카라와 기자의 피라미드 그리고 룩소르 서편, 왕가의 계곡과 장제전은 사후 이승으로 돌아와 영생을 누릴 안식처로, 그들의 서방정토이다. 도굴꾼에게 도굴 당하고 다른 나라에 빼앗기고도 뛰어난 예술품들이 박물관마다 가득 찬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아직 사막 모래의 어디엔가 묻혀 발견되지 않은 곳들이 더 많이 있지 않을까. 스핑크스는 코가 깎이고 수염도 빼앗겼지만 오늘도 꿋꿋하게 피라미드를 지키고 있다.
이집트 박물관, 누비아 박물관, 룩소르 박물관, 문명 박물관을 통해 신전과 무덤에서 발견된 유적들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문명 박물관 지하에 전시된 왕들의 미라를 보면서 경외심과 경건함 마음이 저절로 나왔다. 신들과 함께한 당당한 그들의 생전 모습을 그려보며 환생이 아닌 영생을 바란 고대 이집트인들의 자신감을 마주했다. 하지만 영생을 바라고 만든 그들의 영혼을 위한 안식처, 미라가 몇 천년이 지난 후, 이렇게 볼거리로 전시될 줄 아마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영원히 기억해 주는 우리가 있으니 아마 그들은 영원히 사는 것이리라.
사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오아시스가 아닐까? 4륜구동 짚차를 타고 모래 언덕을 오르내리는 스릴과 바람에 맞서며 탄 아찔한 샌드보딩, 그리고 사막 바로 옆에 펼쳐진 카룬 호수, 레욘 호수 그리고 매직 호수는 여행의 오아시스였다. 그 옛날 바다였던 고래 계곡에서 고래 화석들을 찾아 끝없이 펼쳐진 사막 위를 걷는 시간 또한 빠지면 아쉬울 것이다. 한낮 태양의 열기를 멀리서 온 객들을 위해 센스 있는 바람이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마지막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아프리카 속의 유럽을 살짝 느끼게 했다. 탁 트인 지중해를 마주한 카이트베이 포트는 파란 하늘의 흰 구름과 푸른 바다 위 하얀 요트가 배경이 되어 멋진 풍광을 선사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안에서 책도 펼쳐 보고, 전면에 새겨진 한글 찾는 소소한 재미도 느꼈다. 마지막 방문지 폼페이 기둥과 카타콤을 돌아보며 아쉬운 끝마무리를 했다.
넘치지 않고 편안한 여행 동무들과 함께 유쾌한 여행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현지인들의 생활에 대해 차분하고 정성스럽게 설명해 주신 함미선 가이드님과, 여행 내내 세심하게 챙기고 분위기를 이끌어 주신 강일옥 차장님 덕분에 여행을 알차게 즐길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슈크란~~!
*아쉬웠덨점*
1. 첫날, 이집트 고고학 박물관. 목요일이 이슬람인들의 휴일 전날인 관계로 마감 시간인 5시도 되기 전에 급하게 쫒겨 나다시피 관리인들에게 밀려 나와서 씁쓸했음. 휴일 전야니깐 너그러이 이해해 줄 수준.
2. 둘쨋날, 아스완행 비행기가 두시간 연착. 덕분에 너긋한 아침 시간을 보냈지만 아스완의 일정이 바쁘게 돌아갔다. 특히 필레 신전 빛의 공연은 너무 깜깜해진 뒤 도착해서, 필레 신전의 온전한 모습을 보지 못해 매우 안타까웠다. 여긴 이집트니깐 요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인샬라~~
3. 파이윰 튀니지 마을 방문. 이집트 인들이 사는 마을로 직접 들어가 골목길을 걸으며 간접적으로나마 현지인이 되는 여행의 기분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였는데, 상가 골목만 조금 걷다 오는 아쉬움이 있었음. 울타리 너머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채취를 느낄 수 있는 걷기가 있으면 금상첨화일 듯.
*여행의 베스트 파이브*
1. 아스완, 펠루카 위에서 넘어가는 해가 빚어내는 천연 그대로의 빛 쇼. 시시때때로 오묘한 빛으로 변해가는 나일강과, 노를 저으며 멋진 노랫 가락까지 덤으로 얹으니 별유천지 비인간이라~~~
2. 아부심벨 가는 새벽길. 별과 달과 해의 사이좋은 교대식을 감상하며 달린 사막길은, 람세스2세가 배를 타고 나일강을 따라 황금의 루비아 땅을 향해 갈 때 느꼈을 두근거림과 신성한 기운을 조금은 실감하게 했다.
3. 버스를 타고 지역 이동을 하면서 창밖으로 보이는 이집트인들의 생활 모습과 소탈한 농부들의 모습은 우리들의 70년대를 연상하게 하는 소소한 즐거움을 주었다. 앞만 보며 걷는 우리의 거리와는 대조적으로, 길거리 곳곳에 걸터앉아 마주 보고 나누는 그들의 소박한 행복이 느껴졌다.
4. 파이윰 오아시스 고래 계곡 산책길은 사막과 태양과 호수 너머 불어오는 산뜻한 바람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 이집트에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5. 옛 고도 멤피스. 파괴되고 흔적만 남은 프타 신전 안마당 야외 박물관에서 아침 햇살을 받으며 제행무상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여유있게 어슬렁거린 시간. 물질은 파괴 되었어도 그들의 정신은 그 땅에 스며들어, 마아트의 정의를 따르듯 알라신의 율법을 지키며 사는 그들의 울림이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