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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Buen Camino~' <나의 산티아고 가는 길>
작성자 백*원
작성일 2017.10.10


순례자들의 인사인 ‘부엔까미노’를 난 어쩌면 내 이름보다도 많이 들었다.

스치는 바람과 스치는 공기처럼 사람들과 풍경들이 지나갔다. 머리와 몸이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난 그 하루를 오직 길을 걷기 위해 행동했다.

 

 “각자의 길을 걸으세요.”  첫 날 윤익희 이사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생각했다. 길이 하나인데 어떻게 각자의 길을 걷는다는 말인가? 더욱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번째날은 순례길을 걷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도 나쁠 건 없었다. 두 번째날은 레온의 레온대성당, 보티네스 저택, 아스토르가에 주교동, 구시가지를 방문하고 스페인 현지식을 먹었다. 현지식은 코스 요리로 처음엔 빵과 샐러드, 메인요리로는 쇠고기, 돼지고기, 생선 등이며 디저트는푸딩 등이었다. 현지식은 양이 아주 많았지만 맛은 괜찮았다. 

 

  드디어 도보순례 1일차, 내가 걸을 길은 오 세브레이로 - 뜨리아까스텔라다.

기대와 긴장이 반씩 섞인 마음으로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생각했다. 아, 춥다.

난 스트레칭을 한 후 성당에서 순례자 도장인 ‘세요’를 찍고 가게에 들러 옷을 사 입었다. 이제 순례길을 걸을 준비가 완벽히 되어 출발했다.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22km라는 엄청난 거리가 내 배낭에 들어가 있었지만 난 그게 얼마나 긴 거리인지 실감하지 못했다. 실감하지 못했기에 페이스조절이 어려웠지만 어쩌면 22km를 실감하지 못했기에 순례길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보이는 건 하늘과 사람들과 나무들, 집들 등 수 많은 것이 보였지만 난 노란 화살표와 사람들의 걸음 소리, 말소리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걸으며 사람들이 그 길을 걸으며 하라던 ‘생각’을 할 수 있을 줄 알았지만 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난 오직 길을 잃지 않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화살표와 발에 너무도 집중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도착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으로 걸었다.

이 길을 걷고도 다시 걷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점점 줄어드는 말수와 그와 반대로 점점 늘어가는 가쁜 숨소리, 중력이 2배가 된 듯한 발의 고통은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힘든 데 내일도 모레도 걸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내 머리를 지배할 때쯤 나는 그 끝을 생각했다. 그 끝에 가까워지기 위해 나의 속력과 남은 거리와 시간을 계산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도착했다. 뿌듯함보다 더 이상 걷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컸다.

 

도보순례 2일차, 3일차 또한 그렇게 걸었다. 도보순례 4일차 또한 그렇게 걸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4일차는 같이 순례길을 걸었던 아빠와 함께 걷지 않았다. 

 

  도보순례 4일차, 엄밀히 말하면 22.5km 중 18km를 아빠와 걸었다. 하지만 난 아빠의 페이스에 맞춰 걷는 것에서 탈출했다. 난 처음으로 내 페이스대로 걸었고 누군가 잡고 있던 나의 발목을 놓아 준 것 같았다. 배낭에 들어있던 무언가, 아주 무겁던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달라진 건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상황과 페이스뿐이었는데 각자의 길을 걸으라던 윤이사님의 말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되었다.

난 그렇게 남은 4.5km와 5일차, 6일차 또한 내 길을 걸었다. 사람들을 지나치고 사람들이 지나치며 지나치는 사람들과 지나치듯 인사와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여전히 화살표와 사람들의 소리에 의지해 걸으며 속으로 거리 계산을 하고 지루해 했다. 그래도 어쩌면 조금은 변화했고 잘 걸었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극히 아주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도보순례 7일차, 도보순례 마지막날이다. 이 날은 너무도 사랑스럽게도 약 5km 정도만 걸었다. 하루에 4만보씩, 20km씩 걷던 사람에게 5km라니! 당연히 쉬운 것이었다. 어쨌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지막 지점까지 도착하였다.

이제 정말 도착이다! 그러나 150km 그 이상을 걸으며 마침내 도착했지만 나의 몸은 그 끝을 느꼈지만 나의 마음은 그 끝을 느낄 수 없었다. 도착하면 엄청나게 환호하리라 생각했지만 왠지 모를 허무함과 섭섭함이 어느 순간 찾아왔다. 물론 기뻤고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시원했다.

그래도 허무함과 섭섭함은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이 내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거라 단정하던 이 순례길을 다시 걷던 사람들의 기분일까? 다시 걷는 다면 이 기분에서 도망칠 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시 걷고 싶었다. 당연히 학교를 다시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는 발끝에서부터 전해져 오는 통증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비슷하지만 아름다운 눈 앞 풍경에 의한 지루함으로 내가 이 길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스쳐오는 바람으로 여유로움을 느끼고 숨소리와 발소리를 내며 걷는 사람들로 생기를 느끼고 온 몸을 뒤덮은 힘든 감정으로 내가 도착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순간 거기서 느낀 모든 감정들이 하나의 점에서 선이 되고 면이 되며 도형이 되어 땀과 물집이 되었다. 그리고 땀과 물집이 내게 잊을 수 없는 무언가를 주었다.

 

그 잊을 수 없는 무언가가 마법처럼 언제가 나를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 다시 데려줄 것 같다.

 

추신: 제게 호의를 베풀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